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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3 < 차마고도의 이족을 만나다! > (2)

 

이족은 옛부터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민간신앙이

지배하던 족속으로  아가씨들은 15세가 되면 조혼을

하거나 축제기간  외부 남자들이  가슴을 만지게

함으로써 스스로 부정한 상태가 되어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풍습이 있는 종족입니다.

 

해발 3400m 이상의 지역에 살기 때문에 하루에 사계절

날씨가 모두  나타나며 그만큼 자연이 척박하여 민심도

흉흉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의료봉사를 위해 그곳에 가는데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여권과 현금은 몸에 휴대하고

유사시 짐은 버리고 몸만 빠져나가자는 안내를 받은터라

그만큼 긴장감이 감도는 여행이었습니다.

 

 

 

 

 

제주에서 점심때 출발, 김포, 인천을 거쳐 중국 윈난성 쿤밍까지 6시간 , 거기서 바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리장까지 1시간을 날아가서 리장에서 첫날밤. 공항은 인천 공항보다 큰 규모였으나, 다음 날부터 우리를 기다리는 건 다마스 비슷한 빵차인데 차체가 양철판이라 빈약하고 조수석에 앉으니 의자가 형편없어 사정없이 똥침을 해댑니다. 지나가는 택시를 보니 미국처럼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철조망이 있는 것이 이곳의 치안 상태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빵차를 타고 4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따라 달리니 지나가는 차량의 매연과 도로의 황토 흙먼지로 얼굴은 끈적하고 머리카락이 두터워졌습니다.

 

호도협 입구에서 도로가 비로 인해 산사태로 막혔으니 못간다며 공안이 막아섰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선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더니... 한시간 쯤 기다린 후 차를 현지인 빵차로 갈아타고 다시 출발!. 이제부터 진짜 모험이 시작된 셈입니다. 현지인 여성운전자는 보호난간도 없는 꾸불꾸불한 좁은 2차선도로를 사정없이 달렸습니다. 우리와 같은 우측 통행인데 오른쪽은 천길 낭떠러지고 갓길도 없고 보호 난간도 없습니다. 조수석에 탄 치과 선생님은 아예 사색이되어 버렸습니다. 거기다 우기로 인해 여기저기 도로는 패여 있고 무너진 돌덩어리들이 도로에 방치되어 있어 2차선도로지만 1차선이나 다름없는데 거의 30~40도 가까운 언덕길을 클랙션 소리도 요란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갑니다. 바이킹도 이거보단 덜 무섭다며 가슴을 졸이게 하더니 1시간쯤 지나자 하프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세계 3대 협곡이라는 이곳은 깊은 절벽과 맞은 편의 옥룡설산 만년설이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곳이며, 우리나라의 산악회 깃발도 빼곡이 걸려있었습니다. 산장에 도착해보니 비로소 이 곳의 장관이 눈에 들어오는데 발밑에 1000m 낭떠러지가 있고 맞은 편 설산은 해발 5800m 짜리 히말라야의 끄트머리인데 아이맥스 영화의 최고점 보다 더 높은 지점에 정상이 보였습니다. 타고 온 차가 떠나야하므로, 짐을 내린 후 잠시 밀어주고 20m정도 뛰었더니 숨이 찹니다.

“ 아 여기가 해발 3000m 구나~~”

 

산장의 화장실은 한쪽면이 오픈되어 있어 산을 보면서 일을 보고 숙소의 창문도 산을 향해 뚫려있어 침대에 누워서 절경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손님들과 짧은 영어로 어찌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래층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 “위하여~~~” 역시 한국인의 흥겨움은 아무도 못말립니다.

 

다음날 아침 야크 젖과 버터녹인 것, 애플파이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3시간 정도 협곡의 옆구리를 따라 트래킹을 했습니다. 절벽사이에 간간히 폭포수가 흐르고 방목중인 염소들이 보였습니다. 염소들은 돌뿐인 절벽을 어찌나 날래게 다니는지 고소공포증이란 없어보였습니다. 여름이지만 지대가 높고 바람이 많아 햇살만 따가울 뿐 땀에 젖지는 않아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티나 산장을 거쳐 다시 빵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이젠 적응이 됐는지 1시간을 졸고나니, 드디어 이족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차가 마을 공터에 들어서자 3~4명의 어린아이들이 마중을 나오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씻고 안씻은 듯한 때꾸정물 흐르는 얼굴, 흙먼지와 온갖 오물로 뒤범벅된 머리카락, 헤지고 찢어져 거적대기 같은 옷 그래도 표정은 해맑고 눈빛은 선해보였습니다. 마을 공터 조금 위쪽에 소꼴을 쌓아놓은 창고 같은 건물이 있었는데, 3면만 벽이 막혀있는 그곳에 진료실을 꾸렸습니다. 화장실도 없어서 우선 여성들을 위해 임시 화장실을 만들고, 남자들은 대강 숲에서 해결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150여명 정도였고, 대부분 너와집과 움막집을 짓고 사는데, 추위 때문인지 방 한가운데 불을 피우는 곳이 있어서 음식을 데워먹고, 난방을 해결하는 듯했습니다. 여성들의 머리를 만지는 것은 절대 금기시 되며 커다란 네모형의 모자를 쓰고,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노동이 고되기 때문인지 관절염, 근육통환자가 대부분이었고 술, 담배를 어린 나이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소화기 질환이 많았습니다. 고지대의 작은 마을은 먼 이국땅에서 온 낯선 손님들로 인해 잔치처럼 술렁거렸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따듯하게 우리를 맞아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마을 주민들이 거의 대부분 진료를 받을 수 있길 바라며 늦은 시간까지 진료를 계속했습니다. 준비해간 태권도 시범도 보이고, 태권도를 가르쳐주며 서먹했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지켜보는 어른들도 흐믓해지고, 긴장감으로 시작되었던 이족에서의 하루는 기쁘고 감사한 일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허기를 채우려고 준비해간 햇반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우리에게 자신의 창고를 진료소로 빌려준 청년이 훈제 염소고기를 대접해줍니다. 진료에 대한 감사의 마음임을 금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년설로 머리를 치장한 설산을 바라보며, 뜨거운 태양의 자외선을 식혀주는 산바람을 즐기는데 쫄깃한 촉감의 훈제고기를 베어물자 입안 가득 소나무의 그을음 향과 염소의 육질이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배고픔과 청년의 따듯한 마음 때문에 더 맛있었던 염소고기의 맛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으음~~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해가 지자 금새 기온이 떨어지며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잠자리의 한기를 막기 위해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은박 돗자리를 깐 후 침낭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아늑해서 몇몇은 벌써 코를 곱니다. 바닥이 딱딱해서인지 뒤척이다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칠흑같이 어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설산주변에서 번쩍거리는 빛이 나더니 이내 빗방울이 후두둑 거립니다. 칠흙 같은 어둠 사이로 번개가 치며 설산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너무 높아서 구름의 모양인줄로 알았습니다. 날이 흐린 탓에 은하수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는데 발자국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에게 고기를 베풀어준 그 청년이 비를 맞으며 뜨거운 보이차와 컵을 들고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고마운지 누웠던 분들도 다시 일어나 차를 마시며 청정한 대자연의 정취를 함께 누립니다. 미개한 족속이라 거칠고 사납다며 인터넷에 떠돌던 이야기들은 전부 헛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존을 위해 거칠어지게 되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다가갈 때 은혜를 베풀 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기분좋은 티타임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쒸웅~~” 바람이 한번 불자 찬 기운이 머리부터 침낭에 들어가 있는 허리까지 퍼집니다. 바람막이 옷에 달려있는 비닐모자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꽁꽁싸매고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잠이 들은 듯한데, 닭이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오랜 야간 콜로 인해 귀가 예민한 저는 귀마개를 하고 자는데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주섬주섬 일어나서, 건너편을 바라다보니 해가 뜨는지 산 뒤쪽부터 밝아져오고 마을 아래로 깔린 구름 카펫이 보입니다. "우와 우리가 해발 3400m에서 비박을 한 거구나..." 은근한 성취감이 기쁨으로 피어나며 전날의 피곤함이 다 사라집니다. 평생 다시 하기 힘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침으로 햇반을 데우는데 어제 온 그 청년이 개밥그릇처럼 지저분한 그릇에 얇게 저며진 하얀 덩어리들을 먹으라고 내놓습니다. 한쪽은 갈색으로 그을린 부분이 있어 버섯 모양인데 굵은 설탕을 뿌려왔습니다. 하얀 덩어리를 먹어보니 치즈맛이 나는데 약간 시큼합니다. 그래서 설탕을 뿌려먹는구나. 갈색껍데기 같은 부분을 먹어보니 신맛이 매우 강해서 눈물이 날려고 하는데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보랴 싶어 연신 입으로 가져갑니다. 뭐냐고 물으니 시장에서 사온 염소 치즈인데 이름이 “나이쨔” 라고 답을 하며 연방 기침을 합니다. 어제 우리 일행들이 추울까봐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빌려주는 바람에 자기는 덜덜 떨고 잤더니 그렇다는 겁니다.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에 깔고 잤던 내 담요와 고추장 볶음 캔을 주었습니다. 그 청년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기대보다 행복했던, 예상보다 아름다웠던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순탄치 않아서, 산사태로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족히 200톤은 됨직한 바위와 흙무더기가 도로를 덮치고 지반이 유실되어 위험한데 벌써 몇몇 분들이 뚫고 지나갔는지 발자국으로 눌린 자국을 따라 좁은 길이 나있습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암벽등반보다 어렵다는 산사태더미 지나가기입니다. 앞장서서 큰 바위 몇 개를 지나가자 폭30cm 정도의 길이 보이고 1000m는 되는 낭떠러지가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이 중도에 울면서 멈춰서는 바람에 서로 달래면서 간신히 건너고 나니, 22kg 짜리 약품 가방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병원에 다시 돌려줘야할 것들도 있는데...' 투철한 사명감으로 다시 건너가 가방을 머리위로 들고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비행기에서 우리 일행은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면서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천 공항에서 맛본 매운 라면과 깨끗한 화장실, 아이스커피 한 잔이 이렇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줄이야...한 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간, 벌써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린 이족 마을의 의료봉사는, 우리 모두에게 열심히 감사하며 살아야할 이유와 잊고 지냈던 삶의 소중함을 되새겨준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봉사라고 하기에는 경험하고 받은 것이 더 많아서 부끄럽지만, 준비해간 것들을 나누며, 또 감사의 마음을 받으면서 확인한 것이 있었습니다. 더 많이 나눌 때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이족 모든 주민들이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빌어봅니다. 여러모로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한마음 병원 식구들 모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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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ankim 김용옥